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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비밀

yuhyje 2013. 6. 23. 18:11



학기 중간을 갓 넘겼을 때였던 것 같다. 집에 갔을 때 동생 방에 들렀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하는 것은. 각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했다.

다독으로 시인이 된 동생이다. 열네 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도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부끄럽기 짝이 없다.

동생은 두 권의 책을 빌려주었다.



비밀 / 히가시노 게이고 / 창해



예고된 죽음과 갑작스러운 죽음 중 어느 쪽이 나을까.

잠들었다가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봐 왔다.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는 편이 낫겠다는 것인가. 죽음이 두려워서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나도 죽음이 두렵다. 내 의식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 그것이 가장 두렵다.

살다보면 때때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올 때가 있다. 특별히 어떠한 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랜덤한 상황들이었다.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었다든지, 친구들과 카페에서 밝게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든지, 방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중이었다든지, 너무나 일상적인 순간에 밀려오는 공포라서, 대처 방안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이럴 때마다 그냥, 그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버린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하고, 내 의식이 사라진 뒤에도 이 아름다움은 지속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래도 예고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 동안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무언가를 하게 될 테고, 그러면서 더 아름다워진 세상을 볼 테고, 그러면 죽음도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을 것이고...


부끄럽지만 이건 올 해 들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작가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감정 묘사와 내용 전개, 상상할 수 없었던 반전으로 나를 완벽한 몰입으로 이끌었고, 그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개운함을 단 며칠만에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자기 자신을 죽이면서 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오코는 정말 모나미를 살려낸 것일까? 내가 나이면서도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의식의 죽음. 고통과 행복이 공존하는 현재진행형. 과거로서 잊히지 않는 시간함수...

과연 모두가 행복한 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