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장거리달리기의 꿈을 처음 가진 것이 언제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가오리 할 때 장거리선수로 뛰면서였던 것 같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영법이라는 핀수영을 하면서도, 나는 빠른 것보다 오래 하는 것에 관심이 갔었다. 그래서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최장거리에 이름을 올렸고, 번번이 1500m를 뛰곤 했다. 출전 선수도 많지 않을 만큼 비인기종목이었지만 이왕 하루를 투자해서 경기에 참가하는 것, 물 속에서 오래 수영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다행히 가오리 동기들 중 나처럼 장거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어서 함께 장거리훈련을 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4레인 패밀리 네 명 모두가 학교에 남아 있구나. 04, 06, 09, 10이면 학교에 없어도 되는 학번들인데 :)
장거리라고 해서 세월아 네월아 수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돌핀킥을 한 번 찰 때마다 정성을 들여야 한다. 남자들은 허벅지 힘을 쓰지만, 그러기엔 힘에 부치기 때문에 최대한 전신을 쓰는 방향으로 연습했었다. 온 몸을 30분 가량 움직여 수영하고 나오면 마치 단거리를 뛴 것처럼 숨이 차고 몸이 달아오르는데, 힘들면서도 개운한 그 느낌을 위해 30분을 수영하는 거다.
이런 보람을 땅 위에서도 느껴보고 싶었다. 40킬로가 넘는 진짜 마라톤을 당장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목적을 위해 차근차근 달려보고 싶었다.
아마 처음 달린 건 올 해 2월이었을 거다. 베를린 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뒤, 날이 조금 풀린다 싶어서 동네를 살살 뛰어봤다. 그러다 뮌헨 기숙사 이사를 했는데, 바로 앞에 뮌헨에서 가장 큰 공원이 있는 것 아닌가. 날이 풀렸다 싶으면 반드시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들어왔다.
본격적인 운동은 6월부터였다. 20분부터 시작해서 1~3분씩 늘려갔다. 6월은 일 주일에 서너 번 꼴로 달린 것 같고, 7월 1주~3주까지 총 24일은 매일 달렸다. 점심은 연어달걀샐러드, 저녁은 버터프렛즐을 먹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30분 동안 근력운동을 해 주었다. 오전에 달리지 못 하면 저녁때 달렸는데, 밤에 해가 지면 가로등 하나 없는 공원 대신 U6 라인을 따라 달렸다. Studentenstadt에서 Münchener Freiheit를 지나 Gisela str. 정도에서 돌아오면 40분 달리고 10분 걷는 정도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달리던 길목에서 사람들은 맥주를 한 잔 하거나 거대한 아이스크림 파르페를 먹으며 여름 밤을 즐기고 있었고, 할아버지들이 아이 몸집만한 말로 바닥에서 체스를 두고 있었으며, 때로는 나처럼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때 늘은 근육량이 2.5킬로 정도 된다. 최장 50분까지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것도 7월이니까. 달리기에 정을 붙인 시기이기도 하다. 비가 와도 맞으면서 달렸고, 좀 어두워지면 손전등을 켜고 달렸다.
귀국 후 다시 달리기 시작한 것은 9월. 늘 자연을 달리다가 트레드밀을 이용하니 영 상쾌하지가 않았다. 달리기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기계 위에서 달리는 것이 더 쉽다고도 하고. 그런데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트레드밀 위에서의 훈련도 꽤 유용했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체화시켜 준다고나 할까. 힘들어도 계기판을 보며 참아버릇 했더니, 폐활량이 더 빠르게 늘었다. 힘들다고 바로 속도를 늦추는 공원 달리기와 확연히 다른 점이었다.
그러던 중에 발견한 공고가 바로 카이스트런(KAISTRUN)이다. 중앙서울마라톤에 채러티런 항목으로 들어간 10km 달리기. 달리면서 기부한다는 의미도 좋았고,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결국 동기 언니 한 명과 함께 주저 없이 선택.
목표가 생기니 훈련에도 힘이 붙었다. 꾸준히 달리는 것은 물론, 총 운동량을 늘려갔다. 다시 자연 트랙에서 달리는 훈련 시작했을 무렵, 오른쪽 뒷머리가 심하게 당기면서 중심을 잡지 못했던 건 약간 아찔한 경험이다.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신발 쿠션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디데이. 11월 9일이 왔다.
중앙서울마라톤 측에서 보내 준 옷을 입고 아침 일찍 잠실주경기장으로. 예전에 처음 마라톤을 한다고 했을 때는 '무슨 마라톤이냐' 하셨던 부모님도 새벽같이 일어나 나를 데려다 주셨다. 응원해주신 건 말할 것도 없고. 덕분에 한 시간 걸릴 거리를 40분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도서관엔 공부하는 사람들뿐이고 오락실엔 게임하는 사람들뿐이라더니, 여긴 온통 달리는 사람들뿐이었다. 세상에, 난 이렇게 많은 마라톤 클럽이 있는 줄도 몰랐다. 60년생 쥐띠 클럽, 하남 천주교회, OO고등학교 동문 등, 결집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집단이 저마다의 모임을 구성하고 있었다.
8:00AM START!
옹기종기 모여 서서 우리도 사진을 찍고 출발선으로. 원총에서 김밥 간식과 에너지바 같은 것들을 잔뜩 챙겨준 덕에 든든히 시작할 수 있었다.
준비 그리고 시작.
일요일 아침, 8차선 도로 한복판을 언제 달려보겠나 싶었다.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가려다 뒤쳐지기를 몇 차례, 나만의 페이스메이커를 점찍어 뒀다가 뒤쳐지기도 몇 차례. 그래도 5킬로까지는 열심히 뛰었다. 나이키런 어플이 Five Kilometer, 라고 말해주는 순간, 힘들어지기 시작한 순간의 직전까지는.
훈련할 때 5킬로까지만 뛰어봤던 것이 너무 정직하게 드러난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늘 공복 상태에서 훈련하던 내가 김밥을 먹은 것이 탈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걷기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끝까지 걸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아주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끝까지만 가자, 끝까지만. 물도 마시지 않고, 물 적신 스펀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플투를 들으며 최선을 다해 달렸다.
다행히 6km 지점의 커브에서 엔돌핀이 솟았고, 7km쯤부터는 다시 힘이 났다. 9.5km 지점을 넘자 "채러티런 우회전하세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스퍼트를 내어 골인 지점까지 들어왔던 것 같다. 6킬로 지점부터 9킬로 즈음까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확실히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러너들이 한참 달리고 있을 때, 카이스트런 주최측에서 피니시라인에 준비해 둔 모숨사과.
준비 많이 했더라. 덕분에 부담 없이 즐겁게 달릴 수 있었다.
골인이다!!
기록은 1시간 00분 25초. 바로 주저앉지는 않았다.
더 달리라면 달릴 수 있었을까. 그랬던 것 같다. 예전 북한산 때처럼.
완주메달 & 모숨 사과와 함께
3분 정도 늦게 들어온 언니와 함께 카이스트런 현수막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4학기차들의 마라톤이라니. 분명 추억이 될 거다.
골인지점의 카이스트런 현수막 앞.
셔틀버스로 다시 돌아온 주경기장에서.
10km만 달리고 버킷리스트에 줄을 그으려 했었다. 그런데 뭔가 욕심이 난다.
10km 기록 단축 또는 하프마라톤.
아무래도 내년 버킷리스트에 항목 하나가 추가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