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공연

뮤지컬 WE 2015 겨울 펍파티 에필로그

yuhyje 2015. 3. 15. 23:45



뮤지컬 WE 2015 겨울 펍파티

뮤지컬 동호회 WE 2015 겨울 펍파티 참가자들

2015.02.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이 글을 쓰게 되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공연 후유증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좀 힘들었거든.


목소리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그만큼 커다란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무대경험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드럼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못 해도 10회 이상일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커다란 악기 뒤에 앉아 박자를 만드는 것과 이번 무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숨을 곳 하나 없이 온전히 관객들의 시야에 내던져지는 느낌.


신기한 것은 이 느낌이 두려워 피하고 싶다기보다는 여기에 적응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고치고 싶고, 자꾸 연습해서 무대에 오르고 싶고... 저마다의 학업과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모여들어 뮤지컬 넘버를 듣고 공부해서 연습하고 공연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대학로 89번가



뮤지컬 동호회에 들어간 것은 어쩌면 우연이었다. 하필 작년에 그 수업을 들었고, 하필 그 때 ㅎㅈ 언니가 조교를 맡았었지. 언니의 뮤지컬 영상을 보고 넉살도 좋게 말을 걸었더랬다. 다음에 그 동호회에서 뭔가 또 하게 된다면 나도 좀 불러달라고. 고맙게도 언니는 "뮤지컬은 아니지만 조그만 홈커밍 형식의 공연이 있다"며 나를 초대해줬다. 




연습중 >>>

Seasons of Love - 렌트




연습중 >>>

우리 - 싱글즈



대학 동아리가 아닌 사회인의 동호회였다. 물론 학생도 섞여 있었지만, 대학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이런 동호회가 존재하고,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멋진 아웃풋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취미로서 편안하게 뮤지컬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곳.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자발적으로 모여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노래하는 곳. 내가 경험한 첫 번째 동호회이기 때문에 대조군이 없긴 하지만, 그 어떤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추천해 줄 수 있다. 




공연중 >>>

Summer Night - 그리스




공연중 >>>

Summer Night - 그리스




한겨울에 여름옷




다시 겨울옷으로

이 날의 드레스코드는 레드 앤 블랙이었다. 레미제라블의 레드블랙 합창에 딱 들어맞는 코드.




공연중 >>>

그런가봐 - 번지점프를 하다




최고로 귀여웠던 그런가봐 팀

슬프고 우울할 것만 같았던 작품에 이런 귀여운 넘버가 있었다니 ㅎㅎ



뮤지컬은 라이브다. 따라서 가사와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명확한 발음과 소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배우들은 기교를 넣는 대신 맑은 목소리를 지향하게 되고, 이와 같은 노력은 곡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맑은 음색을 만들어낸다. 듣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점이 나의 정서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




공연중 >>>

빨래 메들리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빨래다. 서울의 정서, 소시민의 삶, 이런저런 표정의 사람들을 웃음과 눈물로 맛깔지게 버무려 놓은 뮤지컬 빨래. 실제로 빨래 공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주축으로 하여 한 시간이 훨씬 넘는 공연을 15분짜리 메들리로 바꾸었는데, 이게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공연 이후 얼마간 허우적거렸던 것도 이 빨래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만큼. 아무리 좋아하는 곡이어도 연습하는 모습을 계속 보다보면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것만큼은 보고 또 봐도 감동이 사그라들지를 않았다.


연습 영상을 따로 찍어서 돌려보고, 공연 영상도 계속 돌려봤다. 실제 배우들이 연기한 공연 영상도 찾아서 봤고. 이런 말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실제 공연보다 펍파티의 연출이 훨씬 뛰어났다. 내가 이 동호회에 정이 들어서 그런가, 라고 생각하던 중, 펍파티를 본 뒤 빨래 실제 공연을 봤다는 어떤 지인분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제 공연에서는 뭐랄까... 무대 전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욕심에 감정 전달이 밀린 느낌?


아마도 빨래라는 뮤지컬에 대해서는 내가 언젠가 또 포스팅을 하게 될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본공연을 보러 갈 테니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은 뮤지컬이다.




공연중 >>>

빨래 메들리

비 오는 날이면, 하며 일제히 돌아보는 그들의 시선



지금 동호회 운영진은 차기작 준비에 한창이다. 아쉽게도 나는 참여할 수 없지만. 오늘 카톡방이 지킬을 함께 보러 가자는 대화로 시끄러울 때에도 아쉬운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다.

언젠가는 나도 저들의 무대에 서게 될 거라는 믿음. 저들의 무대를 우리의 무대라고 부르게 될 거라는 믿음.

바라는 것은 결국, 언제가 되었든 이루어져 왔으므로 나는 이것도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단지 지금이 아닐 뿐이니까 ㅋㅋ 감정을 몰아넣는 무대 위의 나를 꿈꾸며... 뮤지컬은 잠시만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