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140430
    기록/2014 늦깍이 교환학생 2014. 4. 30. 22:09



    140430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있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거다. 재밌는 점은 이 시즌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것. 


    이번엔 좀 길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꼬박 4일을 그러고 지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났다. 커튼도 걷지 않고 환기도 없이 며칠을 이 영상 저 영상 뒤적이다가 배가 고파지면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또 누워 자고, 그랬다. 여행을 마치며 페투치니 면을 한 곽 사 들고 들어왔는데, 4일만에 빈 통만 남겨졌다.




    해물을 넣은 오일 봉골레 파스타

    피렌체와 로마를 내륙지역이라 생각하던 내게, 그 곳의 풍부한 해산물은 충격이었다.

    하긴 뮌헨에 비하면 바닷가 수준이니까. 확실히 독일에서 해물 찾기는 힘들다.




    까르보나라

    그동안 수많은 파스타를 만들어 봤지만, 생크림을 사용해 본 적은 없다.

    베이컨, 치즈, 오일, 소금만 사용하여 맛을 낸 리얼 까르보나라.



    파스타의 힘으로 한 가지 고백하자면.. 수업은 갔지만 듣지는 않았다. 물론 독일어 수업은 예외. 다른 수업에서는 노트북을 켜 두고 세월호 기사만 내리 봤다. 마음 아파하면서도 왜 그렇게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기사는, 삼풍백화점 붕괴 때 그저 안타까워하기만 했다던 어느 단원고 학부모의 편지였다. 젊은이들보고 일어나 행동하란다. 그냥 속상해하기만 해서는 바뀌는 것 하나 없다고. 자식을 잃어 보니 이제 알겠단다.


    우울해지면 재밌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봤다. 한참 보다보니 꿈에도 나오고 해서, 여섯 시간을 봤지만 마치 열두 시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 곳이 독일인지 대전인지 분간이 안 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오늘 아침엔 자리를 탁탁 털고 일어났다. 2주만에 하는 운동과 청소. 커다란 이벤트는 아니지만, 역시 기분 전환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하늘이 어찌나 맑던지.



    Studentenstadt 라는 역 이름대로 이 근처에는 학생기숙사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역인 Alte Heide 까지 작고 예쁘장한 마을이 이어진다. 나중에 이런 집 하나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할 때면 으레 떠올리는 바로 그런 집들의 향연.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서재가 통유리 너머로 펼쳐지고, 오밀조밀 돌을 기대어 쌓은 계단과 담쟁이덩굴은 파릇파릇함을 자랑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십 가지 꽃들이 보이는 것만 해도 황홀한데, 봄바람에 그 잎들이 날리더니 꽃비가 되어 내리기까지 했다.




    배낭도 모자라서 피크닉용 가방까지 양 손에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

    그리고 그 주인을 종종걸음으로 따르던 개.




    이 이차선 도로가 이 마을의 큰길이다. 간단한 식료품을 파는 가게의 맞은편, 앙증맞은 집.




    내가 살고 있는 Studentenstadt 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감이다.

    파릇파릇한 잔디와 나무들, 개울가의 물마저 초록색인 Grünstadt(초록동네)!




    저 그네의 줄은 생각보다 짧다. 그네줄을 잡고 의자에 올라서면 통나무가 눈 앞에 보일 정도.

    줄이 짧은 게 아니라 그네를 타기에는 내가 너무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의 심플함이면 이 마을에서는 재미없는 건물인거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돌담. 커다란 돌일 뿐인데도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벤치 아래에 놓인 두 마리의 오리 조각은 덤. 그냥 그 여유가 부러웠다. 정원을 꾸밀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지나가는 이웃들 보라고 기꺼이 장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던 순간만큼은 한없이 넉넉했을 주인장의 마음. 오리 조각네보다는 조금 바쁜 삶을 사는 것인지, 아직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내리지 않은 집도 있었다.


    내일은 5월 1일, 노동자의 날이다. 노동자가 쉬는 노동자의 날.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는 휴일이다. 그래서인지 장 보는 사람들도 많았고, 사람들 얼굴 표정도 좋아 보였다. 밤 시간인 지금, 기숙사 곳곳에서도 파티가 열리고 있는지, 기분 좋을만큼의 나지막한 소음이 들려온다.


    뮌헨에선 지금 리틀 옥토버페스트가 한창이고, 더불어 챔스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제는 뮌헨이 레알에 4:0으로 깨져서 매우 조용했다.. 그래도 뮌헨에 산다고, 졌다니 기분이 좋지는 않더라 ㅎㅎ) 이탈리아는 지난 여행으로 접어 두고, 이제 다시 뮌헨 주민 코스프레를 시작할 때다. 

    독일어도 다시, 교환학생들과의 교류도 다시, 초심으로, 다시.



    '기록 > 2014 늦깍이 교환학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Die Grüne Stadt 푸른 도시  (0) 2014.05.07
    Die Schuhe 신발  (0) 2014.05.07
    Die Vorbereitung 마음의 준비  (0) 2014.04.09
    Die Lange Reise 긴 여행  (0) 2014.03.30
    Transmediale 트랜스미디알레 4  (0) 2014.03.2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