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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k 수도원 기행 2
    글상/Contents 글 2013. 10. 21. 16:38



    연구실이나 과독서실에서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건 경험상, 하기 싫거나 바쁘다는 뜻이다. 대학원 와서부터는 하기 싫은 공부를 할 일 자체가 별로 없었으므로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건 바쁘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처럼 시험기간인데 마음은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 경우? 뭔가 해 두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급한 경우!


    하기 싫을 때라면 잠자코 앉아 있는 것이 상책이지만 마음이 급하다보니 여기저기 공부할 곳을 찾아 전전하게 된다. 최근 며칠간 또 카페 이 곳 저 곳을 찾아다녔건만, 효과는 잠시뿐이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냥 조용한 연구실에 앉아 책을 펼쳤다. 몇 줄 읽기만 해도 마음이 착 가라앉을 것 같은, 양피지 무늬 종이의, 여름에 읽던 수도원 기행... 그레고리안 성가와 함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 공지영 / 김영사





    솔렘 수도원에서 절제된 수도사님들을 바라보며


    생은 혼자 가는 길, 혼자만이 걷고 걸어서 깨달아야만 하는 등산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정상에 헬리콥터를 타고 간들 아무도 그가 산을 정복했다고 말해주지 않듯이, 그건 눈보라와 암벽과 싸워서 무엇보다 자기 앞에 놓인 시간과 싸워서 각자가 가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고독한 길이라는 걸 아시는지도…



    철저한 자기 본위의 생활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극히 비정하게 느껴진다. …(중략)…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다.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있기 때문일까.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하고…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쓰레기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국민의식. 저 파리보다 나았던 이 파리. 과묵하던 친구의 외길 걷기.


    내면 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혁명에 대한 올리비에 수사님의 재미있는 이야기


    혁명. 사실 그것은 트로츠키의 표현을 빌자면 "더 이상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가하는 치명적 외과수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요리가 맛있는 이유도, 유명한 레스토랑이 많은 것도 다 혁명 때문이라는 설명도 재미있었다.





    인생과 소유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


    평생을 살아도 수녀님 수사님들은 자기 소유라곤 성경책과 책, 그리고 옷 한두 벌뿐이라는데 한 달 여행하는 나는 뭘 이리 많이 넣었을까. 게다가 정작 필요한 우산은 하나뿐이고 살까지 부러져 비는 한쪽 어깨를 적시고 있다. ...(중략)... 불필요한 것은 많아 다른 사람들을 수고롭게 만들고 필요한 것은 고장난 그런 인생.


    빛과 소리로 마음을 움직이는 테제. 그 곳 젊은이들의 고뇌에 찬 표정.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젊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라고 나는 아직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원칙과,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우리가 택할 길은 몇 개 안 된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운 것이다. 하느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는 방황하리라, 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노트에 적어가지고 다니던 내 사춘기가 떠올랐다. 아니 한술 더 떠 괴테는 "모든 인간은 그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파우스트에서 쓰기도 했다.


    던킨에서의 수업이 끝난 뒤 성아언니와 점심을 먹으며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방향성에 대해. 이건 단지 논문주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생의 태스크가 걸려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확장일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시야에서는 그러하니까.


    "넓게 봐야 할까 깊이 봐야 할까?"

    "어느 쪽이 더 좋은데?"

    "원리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는데 일 할 때에는 큰 그림을 보고 싶어."

    "그럼 지금은 Emotion 을 잠시 옆으로 미뤄 둬. 그러고 그냥 하는거야. 너의 목표를 위해 필요한 것 모두를."


    그리고 플러스 알파.


    "당신은 꽤 원더풀한 인생을 살 계획을 가지고 있군요."

    처음 만난 두 남자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죽이 맞아 죽겠다는 듯 웃는다. 둘 다, 우리들의 인생이 이렇게 고달플 수가, 하는 표정이다. 테제에 와서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일주일 만나고도 저런 말을 하며 웃다니 여기서 헛 지냈나 보군, 사실 문제는 신이 아니라 신의 피조물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아직도 몰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나는 그 이후 그 스웨덴 남자에게 쌀쌀맞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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