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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k 죽음의 수용소에서
    글상/Contents 글 2014. 4. 9. 23:01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로 추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깨끗한 환경, 매력적인 언어, 다채로운 건축물, 수많은 박물관이 있고,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지리적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이 모든 것들의 꼭대기에는 복잡한 독일 근대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유럽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로마사에서는 지금의 독일(특히 북부)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로마공화국 - 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쉽사리 로마화되지 않았던 걸 보면 게르만 민족이 확실히 강하긴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고, 덩달아 독일역사도 프로이센부터 시작되므로 '장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라 하기엔 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독일은 20세기 유럽사, 아니 세계사의 중심으로 변모했다. 제1차 - 제2차 세계대전부터 분단과 통일에 이르기까지, 독일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짧고 굵게, 엄청난 임팩트로 남겨놨다. 


    나는 독일의 그 발자취가 궁금했다. 돌이켜 보면, 굳이 뮌헨이 아닌 베를린으로 들어가 머무른 이유도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근대사의 흔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유태인박물관이나 지하벙커로는 조금 부족한, 바로 그 부분을 채워주는 수용소 이야기. 이 책은 우리가 수없이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의 아우슈비츠를 보여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 청아출판사



    저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 수감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과 전문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아우슈비츠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 '로고테라피'라는 정신과 이론을 녹여냈고, 따라서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접할 수 있다.


    여기에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줄줄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가스실과 같은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잘 알려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좀 더 알고 싶다면, 책을 직접 읽거나 아우슈비츠를 방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폴란드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읽기 시작했으며,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을 넘어 크라쿠프 옆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의 폴란드어 지명)으로 가는 1940년대의 기차와 거의 똑같은 루트로 크라쿠프를 방문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이 책을 읽으며 크라쿠프로 향할 때의 그 기분이란. 수감자들이 타고 가던 기차보다 수만 배는 쾌적한 폴스키 버스를 타고 있었음에도 괜시리 추워지곤 했었다.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이것 혹은 저것이 있으면 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인 것이다.



    도리어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는 아우슈비츠에서, 빅터 프랭클은 살아남는 방법으로 '삶의 의미 찾기'와 '내면 세계의 극대화' 등을 소개한다.


    수용소에는 대체로 '문화적 동면' 현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정치와 종교였다.


    내면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중략)...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때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에 호송 열차의 작은 창살 너머로 석양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잘츠부르크 산 정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면 그것이 절대로 삶과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믿지는 못했을 것이다.


    외부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에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수들이 침상 위에 빽빽하게 누워서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방문객을 바라보는 사진.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전혀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 혼자만의 공간 찾기.


    테헤란에서의 죽음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고통과 시련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도스토예프스키 -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스피노자 -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니체 - 나를 죽이지 못 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릴케는 '작업을 완수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견디어가며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부종 때문에 고생하던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내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


    정작 자유가 찾아왔을 때 기쁨을 느끼지 못 할 정보로 수감자들은 억압받았다. 다행히 육체가 먼저 일상에 적응한 덕분에 겨우 일반적인 삶으로 돌아왔으나, 수용소 밖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자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현실 앞에서 고통과 환멸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격언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사실 이 책은 역사서나 수필이라기보다는 자기계발서 또는 도덕교과서에 가깝다. 생각 해 보자.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준 당사자의 기록이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사고를 유지했기 때문에 수용소를 나와 이 책을 남길 수 있었다. 


    체험기에 덧붙여진 제3장에는 정신치료기법 중 하나인 로고테라피와 관련된 설명이 있다. 주옥같은 말이 워낙 많아서 수없이 줄을 치며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뮌헨 내려오는 날 책이 자동반납 되는 바람에 (전자도서관에서는 반납일이 되면 책이 자동으로 사라짐) 나의 북마크들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몇 가지 문장을 옮겨놓으니,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거나 요즘 너무 지치고 힘든 분들은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 첫번째 - 의미 찾기


    나는 자살하고 싶다는 환자들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내는 것. 

    것이 바로 실존적 분석, 즉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로고테라피 행동강령 :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로고테라피는 가르침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다. 도덕적 훈계와 거리가 먼 것처럼 논리적 추론과도 거리가 멀다. 비유를 하자면 로고테라피 치료사가 하는 일은 화가보다는 안과 의사가 하는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화가는 자기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안과 의사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주려고 노력한다.


    쇼펜하우어 -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


    실존적 공허는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에겐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전체주의) 사람이 되어 버렸다. ...(중략)... 조사 결과 유럽 학생들의 25퍼센트, 미국 학생들의 60퍼센트가 이런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90퍼센트 정도가 실존적 공허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르다. 

    포괄적인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세계 체스 챔피언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수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


    인생에서 정말로 무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잠재 가능성이다. 가능성은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바로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과거로 옮겨간다. 이렇게 과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일회성을 탈피해 영원한 실체로 보존될 수 있다. ...(중략)... 따라서 삶이 일회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일회성이 우리의 책임 아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인간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염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것이다.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 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 수 있다.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때달았을 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향수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천만의 말씀.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마냥 부러워했었다.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고, 어떤 경험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 자유와 가능성을 나도 다시 갖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잘못 산 것 같은 과거에 대한 후회의 반영이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아마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최대한 많은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히 그 이전에도 간간이 기록해놓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부터 모아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리고는 플래너와 수첩을 늘 지니고 다니며 순간을 기록하고 틈틈이 반성했다. 물론 365일을 한결같이 계획적으로 살 수는 없었으나, 메모에 의거한 생활은 훨씬 양질이었다.


    이제 겨우 20대 후반이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동안 충실히 살아왔다는 전제 하에) 그만큼의 경험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함께 교환학생 와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이어도, 그들이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전처럼 부럽지만은 않다. 물론 그 풋풋함은 부럽지만 ㅋㅋㅋㅋ 그래도 스무살에겐 스무살만의 경험이, 서른살에겐 서른살만의 경험이 있음을 알고 있는 지금, 나는 나의 현재가 자랑스럽고 행복할 뿐이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 두번째 - 연단에서 떨리는 환자에게 더 떨려보라 말하는 역설기법


    예기불안과 역설의도기법 : 나는 환자에게 땀을 많이 흘리게 될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일부러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는지 보여 주겠다는 생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충고했다.

    강박증과 맞서 싸우기를 중단하고 대신에 아주 반어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비웃어 주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증세가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에는 없어지고 만다. 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것.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 가장 마지막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다. 따라서 인간에게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시련에 수치심보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분명 나는 이 책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 전, 이해를 돕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모두 읽고 난 지금, 이 책은 이제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지침서가 된 것 같다. 


    끝으로 기억에 남는 문구 두 가지.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영화는 수천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장면에 다 뜻이 있고 의미가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는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부분, 개별적인 장면들을 보지 않고서는 영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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